영화 리뷰 및 분석

영화 <퍼스트 카우> 리뷰 : 미국 개척시대, 가장 조용한 자본주의 이야기.

lucet 2025. 7. 14. 17:17

가을빛이 물든 숲속 배경 앞에 두 남자가 나란히 서 있는 영화 &lt;퍼스트 카우&gt; 포스터. 왼쪽에는 중절모를 쓴 중국계 남성 킹 루가, 오른쪽에는 수염이 있는 백인 남성 쿠키가 중절모와 낡은 작업복 차림으로 서 있다. 두 사람은 온화한 표정으로 관객을 바라보며, 중심에는 노란색으로 “FIRST COW 퍼스트 카우”라는 타이틀이 크게 적혀 있다. 상단에는 “마스터피스 – THE NEW YORK TIMES”와 “제86회 뉴욕 비평가협회상 작품상 수상” 등의 찬사가 인쇄되어 있다. 하단에는 개봉일 &quot;2021.11.04&quot;가 명시되어 있다.

 

 

1. 영화 기본정보

  • 제목: 퍼스트 카우 (First Cow)
  • 감독: 켈리 라이카트 (Kelly Reichardt)
  • 각본: 켈리 라이카트, 조너선 레이먼드
  • 원작: 조너선 레이먼드의 소설 『The Half-Life』
  • 제작국가: 미국
  • 장르: 드라마, 서사
  • 상영시간: 122분
  • 제작연도: 2019년 (한국 개봉: 2021년)
  • 출연: 존 마가로, 오리온 리, 토비 존스
  • 수상 및 평가:
    • 뉴욕 영화 비평가 협회 작품상
    •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 촬영상
    • 로튼토마토 평점 96% (신선도 인증)

2. 줄거리 요약

1820년대 미국 오리건 준주, 황량하고 거친 개척 시대의 변두리. 요리사 ‘쿠키’는 모피 사냥꾼들과 함께 이동하며 일하던 중, 중국계 이민자 ‘킹 루’를 우연히 구하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삶에 깊은 공감과 유대감을 느끼고, 식민지 경제의 하층에서 살아남기 위해 작은 ‘사업’을 시작한다.

그들의 사업 아이템은 뜻밖에도 디저트다. 퍼스트 카우(마을 최초의 젖소)로부터 몰래 우유를 짜와, 도넛 같은 오일케이크를 만들어 지역 상인들에게 판다. 이 ‘불법적인 우유 도둑질’은 소유와 생존의 경계, 자본과 도덕의 문제를 조용히 건드린다. 그러나 그들의 성공이 커질수록, 더 큰 위험도 함께 다가온다.


3. 주요 인물 소개 및 핵심 장면

● 쿠키 (존 마가로)

섬세하고 조용한 성격의 요리사. 삶에 지친 존재처럼 보이지만, 요리에 대한 감각과 따뜻한 마음으로 킹 루와의 우정을 키운다.

핵심 장면: 쿠키가 오일케이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첫날. 단순한 케이크 하나로 사람들의 미소를 이끌어낸 장면은, 자본주의의 기원을 소박하게 보여주는 순간이다.

● 킹 루 (오리온 리)

중국계 이민자로, 쿠키보다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인물. 쿠키의 요리 실력에 사업적 가능성을 본다. 그의 실용주의는 두 사람의 사업을 현실로 끌어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핵심 장면: 킹 루가 쿠키에게 “이 기회는 두 번 오지 않아”라고 말하는 장면. 모험과 위험 사이에서 그가 취한 선택은 초기 자본주의 정신을 대변한다.

● 주지사이자 소의 주인 (토비 존스)

지역의 실질적인 권력자. 젖소의 소유자이자, 두 사람의 고객이기도 하다. 상징적으로 이 인물은 ‘자본과 권력의 절대자’로 기능한다.

핵심 장면: 쿠키와 킹 루의 케이크를 먹으며 감탄하는 장면. 우유를 몰래 제공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기득권의 무지와 소비만을 보여준다.


4. 주제 분석 : 자본주의의 원형, 연대의 가능성, 그리고 침묵 속의 저항

<퍼스트 카우>는 조용하고 절제된 톤을 통해 관객에게 사유의 여지를 남기는 영화다. 그러나 그 고요한 흐름 속에는 놀라울 정도로 깊은 구조적 성찰이 담겨 있다. 영화는 미국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것은 단지 무대일 뿐이다. 이 작품이 진정으로 그리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가 태동하는 한 사회에서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고, 연결되고, 실패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우선 이 영화는 자본의 출발점을 매우 미시적이고 사적인 사건으로 묘사한다. 젖소 한 마리로부터 시작된 케이크 장사는 본질적으로 '무단으로 취한 자원에 기반한 경제활동'이다. 쿠키와 킹 루는 소를 훔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소의 '생산물'인 우유를 몰래 얻는다. 그리고 그로 인해 만들어낸 상품을 통해 가치를 창출한다. 이 과정은 근대 자본주의의 원형 구조와 매우 닮아 있다. 불균형한 자산 소유 구조 속에서 소수는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다수는 그 아래에서 몰래, 혹은 편법적으로 생존을 모색하는 것. <퍼스트 카우>는 이 기묘한 역학을 조용히 해부한다.

또한 이 영화는 ‘성공’보다 ‘연대’의 서사를 중심에 둔다. 대부분의 자본주의 영화가 경쟁과 욕망, 상승의 드라마를 그리는 반면, <퍼스트 카우>는 두 남자의 신중하고 말 없는 연대를 그린다. 이들은 서로를 평가하거나 이용하지 않고, 말없이 감각을 공유하며 함께 걷는다. 이 우정은 오늘날처럼 효율성과 생산성이 숭배되는 시대에 오히려 더 값진 덕목으로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자연과 시간에 대한 깊은 존중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숲의 소리, 물결, 빵 반죽의 질감 같은 세부적인 표현에 오랜 시간을 할애한다. 이러한 느린 호흡은 자본주의의 시간성이 지닌 '속도'와는 대조를 이루며, 삶의 본질은 경쟁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에 있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하고 있다.


5. 스토리 속에서 찾은 철학적 질문

● 소유란 과연 절대적인 것인가?

영화는 관객에게 소유권이라는 개념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소는 주지사의 것이고, 우유 또한 그의 재산이다. 그러나 쿠키와 킹 루는 그 재산을 직접적으로 침해하지는 않는다. 단지 “누구의 것인지 애매한 틈”을 이용해 살아갈 길을 찾는다. 이것은 단순한 도둑질이 아니라, 소유권 자체가 어떻게 정당화되는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자원이 풍부한 땅에서도 소수만이 그것을 차지할 수 있다면, 그 시스템은 과연 공정한가?

● 생존과 도덕은 양립 가능한가?

쿠키와 킹 루의 행위는 분명히 불법이지만, 관객은 그들을 쉽게 비난할 수 없다.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윤리는 상대적인가, 아니면 절대적인가? 영화는 흑백이 아닌 회색의 윤리 공간을 통해, 인간의 선택이 단순히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 없음을 말한다. 또한 이들의 행위는 탐욕이 아니라 사람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으로 읽힌다.

● 차이를 넘어 우리는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가?

쿠키와 킹 루는 인종도, 언어도, 문화도 다르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이고 부드럽다. 이민자, 하층민, 타자로 살아가는 두 사람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통해 깊이 연결된다. 영화는 인간관계가 반드시 경쟁과 지배의 논리로만 작동하지 않으며, 이해와 신뢰만으로도 견고한 연대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6. 결론 : 가장 조용한 이야기, 가장 강한 울림

<퍼스트 카우>는 보통의 성공 서사와 다르다. 이것은 두 남자가 함께 살아남기 위해 몰래 우유를 짜고, 그것으로 케이크를 만들어 파는 아주 소박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단지 과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구조를,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되묻는다.

성공은 반드시 경쟁에서 이긴 자에게만 주어지는가?
소유하지 못한 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가?
타인과의 연대는 여전히 가능한가?

이 영화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을 내리기보다는, 관객 스스로 질문을 안고 극장을 나서게 만든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오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쿠키와 킹 루가 들판을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단지 도망이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지배와 소유, 탐욕의 질서로부터 벗어난 삶을 향한 조용한 저항일지도 모른다.
<퍼스트 카우>는 주장한다. 가장 약한 자들이, 가장 강한 연대를 만들 수 있다고.


7. 자료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