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및 분석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리뷰 : "나는 네가 어디에 있든, 어떤 모습이든 함께 하겠다."

lucet 2025. 7. 7. 10:10

&quot;다중우주가 겹쳐진 듯한 배경 속에서 중년 여성 주인공이 눈을 감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모습. 주변에 다양한 삶의 조각들이 반투명하게 떠 있다.&quot;

 

 

1. 영화 기본정보

  • 제목: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 감독: 다니엘 콴(Daniel Kwan), 다니엘 쉐이너트(Daniel Scheinert)
  • 각본: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 장르: SF, 액션, 드라마, 코미디
  • 개봉연도: 2022년
  • 러닝타임: 139분
  • 출연진: 양자경, 키 호이 콴, 스테파니 수, 제임스 홍, 제이미 리 커티스
  • 수상내역: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7관왕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등)

2. 줄거리 요약

에블린 왕은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중년의 중국계 이민자다. 남편 웨이먼드는 부드럽고 다정하지만, 무능해 보이기까지 하며, 딸 조이는 세대 차이와 정체성 문제로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세무조사를 받게 되면서 가족과 생계 모두 위기에 처한다.

그러던 중, 세무청에서의 상담 도중 에블린은 다른 세계선의 웨이먼드로부터 다중우주(multi-verse)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녀는 ‘에블린들의 집합체’ 중 가장 실패한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이 오히려 우주의 균형을 지킬 수 있는 열쇠라는 말을 듣는다.

에블린은 자신과 연결된 수많은 다른 우주의 자아들, 즉 셰프, 무술 고수, 영화배우, 심지어는 손가락이 핫도그로 되어 있는 세계의 자신까지 접속하게 된다. 그리고 조이의 다중우주적 자아인 ‘조부 투파키’가 존재의 무의미함을 자각하고 모든 세계를 파괴하려는 것을 막아야 하는 사명을 맡게 된다.


3. 주요 인물 소개 및 핵심 장면 분석

3-1. 에블린 왕 (양자경 분)

현실에선 평범하고 무기력한 가장이지만, 다중우주에선 수많은 가능성을 지닌 존재다.
핵심 장면은 ‘모든 우주가 연결되는 정신적 혼돈의 순간’에서 에블린이 내면의 공허를 직면하고, 각 자아로부터 배운 감정과 능력을 조화시키는 장면이다.

3-2. 웨이먼드 왕 (키 호이 콴 분)

겉보기엔 허술하지만, ‘친절함’이라는 가치로 세계를 지탱하는 존재.
다른 우주의 웨이먼드는 유능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등장하며, 에블린에게 진정한 연대의 의미를 일깨운다.

3-3. 조이 왕 / 조부 투파키 (스테파니 수 분)

현실 세계에서는 성장기의 자아와 엄마 사이에서 고통받는 딸. 그러나 다중우주에서는 ‘모든 가능성을 경험한 후 무의미에 도달한’ 존재이다.
"베이글의 심연" 장면은 그녀가 모든 세계의 무의미함을 집약한 철학적 상징물로 등장시키는 장면으로,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시각화한다.


4. 주제 분석 – 다중우주 속 삶의 선택, 관계의 재발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다중우주라는 복잡한 구조를 통해 다음의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4-1. 실패한 삶에 숨겨진 선택의 가치

에블린은 영화 초반, 스스로를 ‘실패한 인생을 사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남편과의 관계는 소원하고, 딸과의 갈등은 깊어지며, 세탁소는 세무 조사로 폐업 위기에 놓여 있다.
그러나 다중우주를 통해 다양한 세계의 자신을 만나면서,
에블린은 자신이 무의미해 보이는 삶 속에서도 끊임없이 선택을 해왔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이 메시지는 관객에게 일관된 질문을 던진다.

"지금의 나 역시, 무수한 가능성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냐"고.

영화는 다중우주적 설정을 빌려와 관객에게 삶의 실패를 다시 바라볼 시각을 제시한다.
"가능성을 놓친 것이 아니라, 가능성 위에 선택을 통해 삶을 구축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4-2. 가족과 세대간 정체성의 충돌, 그리고 수용의 시작

조이는 영화 속에서 성소수자이며,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가족에게 이해받지 못한다.
에블린은 조이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전통적 가치관에 갇혀 있기에 조이에게 상처로 다가온다.
이들의 갈등은 단순한 모녀간 불화가 아닌, 문화적 차이와 세대 간 단절, 이민 가정의 정체성 위기를 반영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완전한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상대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
‘수용’이라는 형태의 사랑이 어떻게 관계를 회복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다문화 사회에서 발생하는 정체성 문제와 가족 간의 단절을 보다 보편적인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4-3. 무의미한 세계에서 의미를 선택하는 자세

조부 투파키는 다중우주를 모두 경험한 끝에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녀는 존재의 끝에서 공허함을 느끼고, 그 절망을 거대한 ‘베이글’로 상징화한다.
반면, 에블린은 혼란의 중심에서 의미를 ‘발견’하려 하지 않고 ‘선택’한다.
이 차이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형성한다.

에블린은 조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가 어디에 있든, 어떤 모습이든 함께하겠다.”

이 말은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거창한 진리나 통제가 아니라,
결국 상대에게 기꺼이 머물겠다는 태도임을 드러낸다.
친절, 수용, 사랑은 복잡한 세계 속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의미다.


5. 스토리 속에서 찾은 철학적 질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철학적 명제를 다중우주 설정 안에 자연스럽게 통합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넘어, 다음과 같은 존재론적 질문을 제시한다.

5-1. 선택하지 않은 삶은 무의미한가?

영화는 수많은 평행우주를 통해, 관객이 살아가지 못한 삶을 시각화한다.
셰프, 영화배우, 무술 고수 등은 모두 에블린이 '되지 못한 나'를 상징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 삶이 실패로 귀결되지 않음을 보여주며,
오히려 현재의 내가 가능성을 포기한 존재가 아니라, 그 가능성 위에 존재하는 결과임을 강조한다.

이는 장자(莊子)의 ‘호접몽’이나, 키에르케고르의 ‘선택과 반복’ 개념과도 연결된다.

5-2. 의미는 발견하는 것인가, 아니면 만들어내는 것인가?

조부 투파키는 모든 세계를 겪은 후 의미 없음을 확신하지만,
에블린은 그 무의미 속에서 의미를 스스로 선택한다.
이는 실존주의의,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의 명제와 닿아 있다.
세계가 무질서하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행동과 태도를 통해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관점을 영화는 택한다.

5-3. 파편화된 자아를 통합하는 연결고리는 무엇인가?

다중우주에 흩어진 자아를 마주한 에블린은 정체성이 혼란스럽게 붕괴되는 과정을 겪는다.
하지만 결국 그녀를 중심으로 묶는 연결고리는 가족, 사랑, 공동체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개별화된 자아가 가지는 불안과도 연결되며,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구성된다”는 인문학적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6. 결론 – 다중우주를 지나 결국 도달한 ‘지금 이곳’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장르적으로는 SF와 액션, 드라마, 코미디의 결합이지만,
결국 도달하는 지점은 존재와 선택, 관계에 대한 질문이다.
수많은 세계를 넘나드는 에블린의 여정은, 그 어떤 가능성보다도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함께 있는 사람을 붙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로 귀결된다.

에블린은 다른 우주에서 더 성공했거나 더 자유로웠을 수 있었지만, 그곳에서도 느낀 것은 고립과 공허였다.
반대로 지금의 삶은 불완전하고 실패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안에 있는 관계와 책임, 작은 친절은 그녀가 계속 살아갈 이유가 된다.

이 영화는 무수한 가능성과 복잡한 설정 속에서도 본질은 단순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결국 우리를 지탱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곁에 머무는 사람과의 관계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이 단순한 진실을, 가장 복잡한 방식으로 설명한 영화다.


7. 자료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