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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버나움> 리뷰 : 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을 고발하다.

lucet 2025. 6. 9. 02:22

난민 아이가 동생을 안고서 골목길에 서서 정면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1. 영화 정보

  • 제목: 가버나움 (Capernaum)
  • 감독: 나딘 라바키 (Nadine Labaki)
  • 각본: 나딘 라바키, 지하다 두에이리 외
  • 제작국가: 레바논
  • 개봉일: 2018년 (한국: 2019년)
  • 장르: 드라마
  • 상영시간: 126분
  • 주요 출연: 자인 알 라피아, 요르다노스 시프로, 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
  • 수상내역: 제71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 제91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노미네이트
  •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2. 줄거리 요약 : “왜 나를 태어나게 했나요?”

레바논 베이루트의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소년 자인은 열한 살이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어린아이라고 볼 수 없다. 가족을 부양하고, 거리에서 살아남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무너져간다. 극한의 생존 속에서 그는 가족으로부터 버려지고,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채 살아간다.

자인은 부모를 고소한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나를 태어나게 했기 때문에.”

법정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자인의 인생을 되짚는 구조로 전개된다. 그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동생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지만, 동생이 조혼으로 떠난 후 절망에 빠진다. 이후 이주노동자인 라힐과 그녀의 아기 요나스를 만나며 다시 희망을 찾지만, 라힐의 구금 이후 그는 아이를 홀로 돌보며 극단적인 선택을 마주한다.


3. 이 영화를 다루는 이유 : 소년이 된 고발자, 그리고 관객의 침묵을 깨우는 영화

<가버나움>은 단지 사회적 약자의 삶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세계적 불평등 구조와 아동 인권, 국적과 이주의 문제를 집약적으로 묘사하며, 무관심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양심을 향해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가?’라고 묻는다.

주인공 자인은 배우가 아니라 실제 난민 출신의 아이였다. 그가 말하는 모든 대사와 눈빛은 연기가 아닌 현실 그 자체의 진술이다. 이 영화가 픽션이 아니라 현실의 거울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 생생함 때문이다.


4. 주요 등장인물 및 장면 분석

▍자인 – 고발자의 얼굴을 한 아이

자인은 법정에서 부모를 고소한다. 이는 단순한 극적 장치가 아니다. 영화는 자인의 선택을 통해 ‘출생의 권리’와 ‘살아갈 권리’를 동시에 묻는다. 자인은 체념하지 않는다. 그는 피해자이지만, 결코 수동적인 존재로 머물지 않는다.

핵심 장면: 자인이 요나스를 업고 거리에서 방황하며 음식을 구걸하고, 경찰에게 체포되던 장면은 어린아이가 짊어진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가슴 아프게 보여준다.

▍라힐 –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약자

이주노동자이자 불법 체류자인 라힐은 자신의 존재를 숨기며 아들을 키운다. 그녀는 자인의 생존을 도우면서도 동시에 그로부터 생존을 보장받는 아이러니한 관계를 형성한다. 그녀의 구금은 아이들에게 남겨진 세상이 얼마나 잔혹한지를 상징한다.

핵심 장면: 라힐이 체포되던 날, 자인이 문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침묵하는 장면은 그 어떤 대사보다 절절한 고통을 전한다.


5. 주제 분석 : 아이의 말로 쓰인 사회고발문

▍태어날 권리 vs 살아갈 권리

“왜 나를 태어나게 했나요?”라는 자인의 질문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태어났지만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 존재들의 절규다. 생물학적 출산이 곧 부모 자격을 보장하지 않으며, 국가 역시 출생 등록조차 하지 않은 아이에게 어떤 법적 지위도 부여하지 않는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존재들

자인은 태어난 순간부터 법적 존재가 아니었다. 국적도, 출생증명서도 없으며, 교육도 받지 못했다. 라힐과 그녀의 아기 요나스 역시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법이 배제한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정면에서 보여준다. 아이들은 이름이 없고, 보호자가 없고, 그 누구의 책임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어른의 책임, 사회의 책임

<가버나움>은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어른들과 사회가 공모한 구조적 폭력에 대한 고발문이다. 부모는 빈곤에 지쳤고, 국가는 무능하며, 사회는 무관심하다. 이 모든 상황은 결국 어린 생명에게 모든 대가를 전가한다. 영화는 감상적인 연민을 넘어서, 구조를 향한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6. 이야기 중심의 철학적 통찰

▍‘존재한다는 것은 책임지는 일이다’

자인의 존재는 곧 책임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그는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했고, 누구도 그에게 책임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요나스를 돌보며 책임지는 존재가 된다. 이는 레비나스의 ‘타자의 얼굴 앞에서 나는 책임을 깨닫는다’는 윤리학과 맞닿아 있다.

▍피해자이면서도 주체적인 존재

자인은 어린 피해자이지만, 끊임없이 선택하고 행동하며 주체적으로 상황을 돌파한다. 그는 거절당하고, 버림받고, 실망하지만 끝내 체념하지 않는다. 이는 인간의 주체성에 대한 극단적인 상황 속 실험이자, 실존적 저항의 구현이다.

▍‘연민’이 아닌 ‘연대’를 묻는 영화

이 영화는 단순히 불쌍하다고 느끼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민을 넘어선 책임감 있는 연대를 요구한다. 자인의 질문은 관객이 ‘내가 그 부모라면’, ‘내가 그 사회의 일원이라면’이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때 진짜 의미를 갖는다.
이는 단지 아동 영화나 사회 고발극이 아닌, 실천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7. 결론 : 아이의 이름으로 다시 쓰는 세상의 윤리

<가버나움>은 단지 ‘감동적인 영화’가 아니라 하나의 질문이자 하나의 고발문이며, 하나의 선언이다. 자인의 외침은 “왜 나를 태어나게 했는가?”라는 문장을 넘어서, “태어난 이후의 삶을 누가 책임지는가?”라는 근본적인 사회 윤리를 향해 있다.

이 영화는 관객을 향한 구체적인 지적을 하지 않지만, 그 어떤 사회 비판보다 더 날카롭고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관객이 아니라 ‘증인’이 된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자인의 눈빛이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도는 이유는, 그 시선이 우리가 외면해 온 현실을 직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버나움>은 삶의 최소 조건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수많은 자인들의 삶을 대변한다. 그리고 그 삶을 외면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 슬픔으로 끝나는 영화가 아니라, 책임의 시작을 묻는 영화, 연민을 넘어서 행동과 응답을 요구하는 윤리적 외침을 담고 있다. 

자인의 생존은 기적이 아니다.
그건 누군가가 응답했어야 했던 의무가 지워진 결과다.
그리고 이제 그 책임은 관객의 몫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자인을 보았고, 들었고, 기억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분명하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8. 자료 출처

  • 영화 <Capernaum> (2018) 본편
  • 칸 영화제 공식 발표 자료
  • 감독 나딘 라바키 인터뷰, The Guardian (2018)
  • 레비나스 『전체성과 무한』, 실존주의 윤리 참고
  • 유니세프: 중동 난민 및 아동 인권 보고서 (2017~2019)